오욕을 딛고 일어서 전설이 된 골퍼 비제이 싱

오욕을 딛고 일어서 전설이 된 골퍼 비제이 싱

오욕을 딛고 일어서 전설이 된 골퍼 비제이 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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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깔리만딴이 어디인지 아는가? 잘 모르겠다고? 보르네오는 어디인지 아는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뱁새 김용준 프로와 마찬가지로 나이를 제법 먹은 것이 틀림 없다. ‘보르네오’라는 가구 브랜드가 이름을 날렸으니까.

보르네오를 ‘깔리만딴’이라고 부른다. 영어 알파벳 ‘Kalimantan’이라고 표기한다. 그렇다면 ‘칼리만탄’으로 읽어야 맞는 것 아니냐고? 아니다. 현지 언어인 바하사(Bahasa)는 알파벳 ‘K’와 ‘T’를 강하게 읽는다. 그러니 ‘깔리만딴’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깔리만딴의 위쪽 절반쯤은 말레이시아 땅이다. 아래쪽은 인도네이시아 영토이고. 깔리만딴 북쪽 말레이시아 사라왁주에는 ‘미리’라는 도시가 있다. 중국계 이민자가 세운 도시이다. 총명한 독자라면 짐작할 것이다. ‘미리’라는 이름이 한자인 아름다울 ‘미(美)’자와 마을 ‘리(理)‘자를 합친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에는 ‘미리골프클럽’이 있다. 18홀짜리 이 작은 골프장에는 오욕을 딛고 일어나 전설이 된 거장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바로 ‘비제이 싱(Vijay Singh)’의 이야기이다.

비제이 싱은 남태평양 작은 나라 피지 출신이다. 1963년에 태어났으니 지금은 60세가 넘었다. 그는 스무 살을 갓 넘은 지난 1985년에 말로 할 수 없는 불명예를 뒤집어 썼다. 아시안투어 인도네시아오픈 때 일이다. 2라운드가 끝나고 경기위원회는 비제이 싱을 실격시켰다. 그가 스코어를 속였다는 이유였다.

스코어 카드를 잘못 적어내서 실격을 당하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때는 대회 실격에서 끝나지 않았다. 경기위원회는 그를 영구 제명했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스코어를 속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제이 싱은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마커가 적어준 스코어 카드를 그대로 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경기위원회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젊은 비제이 싱이 비뚤어진 욕심 탓에 알고도 고치지 않고 스코어 카드를 그대로 냈을 것이라고 뱁새 김 프로는 짐작해 본다.

비제이 싱은 그 때 이미 결혼을 해서 부인과 아이도 있었다. 투어에서 추방당한 그는 무엇이든 해서 생계를 꾸려야 했다.

부정행위를 했다는 꼬리표가 붙은 그를 반기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미리골프클럽’까지 흘러 들어서 골프 교습을 하게 된 것이다. 스무 살이 조금 넘은 청년은 얼마나 깊게 좌절했을까? 거짓말쟁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고 있으니 말이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190㎝가 훌쩍 넘는 훤칠한 키에 썬캡을 쓴 카리즈마 넘치는 비제이 싱을 상상하면 안 된다. 인구 50만명이 모여 사는 도시에 있는 딱 하나뿐인 18홀짜리 골프장에서 레슨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비제이 싱이라니!

비제이 싱이 얼마나 대단한 골퍼이길래 그러느냐고? 비제이 싱은 세계 골프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상금 1000만 달러(약 130억원)를 돌파한 골퍼이다.

대회마다 상금액수가 늘어난 지금은 한 시즌에 여러 선수가 상금 1000만 달러를 넘기도 한다. 비제이 싱이 PGA투어에서 뛸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는 지난 2004년에 이 기록을 세웠다. 상금 1000만 달러 돌파 말이다. 2004년이라면 타이거 우즈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때이다. 그 해만큼은 타이거 우즈도 비제이 싱을 막을 수 없었다.

아시안투어에서 영구 제명된 그가 어떻게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느냐고? 기가 막힌 기량을 가진 청년이 ‘촌구석’에서 썩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 사업가가 있었다. 그가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아프리카투어에서 뛸 수 있게 후원을 한 것이다.

비제이 싱은 그곳에서 빼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1988년 나이지리아오픈에서 우승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퀄러파잉 스쿨을 거쳐 유러피안투어(지금은 디피월드투어)에 진출했다. 그리고 유러피안투어에 가자 마자 바로 볼보오픈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몇 년 경험을 쌓은 그는 지난 1993년에 PGA투어로 건너갔다. 그리고 첫 해에 뷰익클래식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000년에는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서도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2004년에는 상금 1000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마침내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타이거 우즈를 누르고 말이다. 비제이 싱은 그 해에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을 포함해 무려 9승을 올렸다. 비제이 싱은 PGA투어에서만 통산 34승을 이뤄냈다. 누적 상금은 7100만 달러이다. 역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액수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막 발을 내디딘 투어에서 영구 제명을 당했을 때 그는 얼마나 눈 앞이 캄캄했을까? 골프 인구도 많지 않은 곳에서 교습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작은 수입으로 가족을 돌보아야 했을 때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비제이 싱은 미리골프클럽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칼을 갈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욕과 좌절을 이겨내고 골프 역사에 남는 거장으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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